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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를 '근대유산'으로 다시 읽는 법

by knowledgeof 2026. 2. 6.

지역 역사·건축 보존 프로젝트로 풀어내는 “보존 vs 재생”의 균형

폐교를 활용할 때 가장 흔한 고민은 '무엇으로 바꿀까'이지만 어떤 폐교는 그 질문보다 먼저 '그대로 남길 가치가 있는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특히 1960~90년대에 지어진 학교 건축은 지역의 성장기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우가 많고 마을 사람들의 집단 기억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폐교를 단순한 유휴자산이 아니라 근대유산(지역 역사·건축 자산)으로 바라보면 재생 방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 글은 폐교를 근대유산 프로젝트로 풀어내면서 늘 부딪히는 두 선택지 '보존(그대로 남기기)과 재생(새 역할 부여하기)'를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할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근대유산으로 보존된 폐교

1) 먼저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쓸모”가 아니라 “의미”

근대유산형 프로젝트는 효율만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주민에게 그 공간은 ‘건물’이 아니라 기억의 표지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첫 입학식, 운동회, 졸업식 같은 지역 공동 경험
  • 마을 행사가 열리던 강당, 회의가 열리던 교무실
  • 계단, 복도, 교실 창호 같은 시대감

그래서 출발점은 '활용 계획'이 아니라 가치 진단(기록할 가치가 무엇인지)입니다.

2) “보존”의 장점과 한계: 가장 강력한 콘텐츠, 가장 큰 유지관리

보존은 명확합니다. 건물이 가진 원형과 흔적이 곧 콘텐츠가 됩니다.

보존이 강한 경우

  • 건축적 특징이 뚜렷한 학교(특정 시대 양식, 희소성)
  • 지역사에서 의미가 큰 사건/인물/기억이 얽힌 장소
  • 원형 상태가 비교적 좋은 경우(구조·외장·창호)

보존의 현실적 한계

  • 안전·내진·전기·소방 등 기준을 맞추는 비용
  • 사용하지 않으면 유지관리만 남는 문제
  • '남겼는데 비어 있는' 상황이 오히려 방치로 이어질 위험

결국 보존은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남기면서도 쓰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3) “재생”의 장점과 한계: 지속 가능하지만,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음

재생은 공간을 살아있게 만듭니다. 운영 수익이나 이용자가 붙으면 관리도 따라옵니다.

재생이 강한 경우

  • 지역에 당장 필요한 기능(돌봄, 청년, 문화, 교통 등)이 명확할 때
  • 운영 주체(단체/기업/기관)가 안정적으로 확보될 때
  • 수선·부분 리모델링만으로도 기능이 가능할 때

재생의 위험

  • 과도한 리모델링으로 ‘학교다움’이 사라짐
  • 임대·수익 중심으로 가며 지역 기억과 충돌
  • '어디에나 있는 시설'이 되어 장소성이 약해짐

그래서 근대유산형 재생은 ‘새 기능’과 ‘옛 흔적’의 균형이 핵심입니다.

4) 해법은 ‘전면 보존/전면 재생’이 아니라 “선택적 보존+가벼운 재생”

현장에서 가장 성공률이 높은 방식은 보통 이 중간지점입니다.

선택적 보존(남길 것)

  • 교실 1~2칸은 원형을 살려 기억 전시실
  • 복도/계단/창호 등 '시대감이 드러나는 요소'는 유지
  • 칠판, 사물함, 게시판 같은 흔적을 큐레이션

가벼운 재생(쓸 것)

  • 강당: 소규모 행사/상설 프로그램 공간
  • 일부 교실: 기록연구실, 교육실, 작업실 등 현실적 기능
  • 운동장: 지역행사 동선 유지(너무 개발하지 않기)

‘다 남기기’보다 '대표 장면만 남기고 나머지는 쓰게' 하는 방식이 운영에 좋습니다.

5) 근대유산 프로젝트는 ‘기록’이 절반입니다

건물을 남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가치가 있는지 증명해야 하고 이후 운영에서도 이야기로 써먹어야 합니다.

  • 구술 채록(졸업생, 교사, 주민의 기억)
  • 옛 사진·문서 수집(연감, 졸업앨범, 학교 신문)
  • 건축 요소 기록(도면, 재료, 변화 과정)
  • “학교의 하루” 같은 생활사 아카이브

이 기록은 전시뿐 아니라 관광·교육·브랜딩까지 확장 가능한 자산이 됩니다.

6) 주민과의 합의 포인트: “무엇을 절대 건드리지 않을지”를 먼저 정합니다

근대유산형 프로젝트에서 갈등은 대개 '변경'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합의는 이렇게 잡는 게 좋습니다.

  • 절대 보존 요소(예: 복도, 교실 한 칸, 교문, 강당 외관 등)
  • 변경 가능 요소(안전·접근성 개선, 내부 가구, 설비 교체 등)
  • 운영 원칙(상업화 범위, 대관 기준, 사용료, 우선 이용 대상)

‘가능/불가’를 먼저 정해두면 이후 논쟁이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7) 지속 운영을 위한 수익 구조는 “유산 훼손 없는 범위”에서 설계합니다

근대유산 프로젝트는 상업성이 과해지면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대신 작은 수익을 여러 줄로 가져가는 게 안정적입니다.

  • 해설 투어(주말 정기)
  • 기념품/출판물(기록 기반)
  • 강당 대관(지역 행사 우선)
  • 전시/교육 프로그램 참가비(소액)
  • 외부 협력 프로젝트(대학, 연구기관)

돈을 크게 벌기보다 '유지비를 감당할 만큼'이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폐교 근대유산 프로젝트는 ‘남길 것’과 ‘쓸 것’을 동시에 설계하는 일

폐교를 근대유산으로 풀어내는 관점은 단순 활용 아이디어보다 한 단계 깊습니다. 보존은 의미를 지키고 재생은 지속을 만듭니다. 그래서 답은 극단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보존하고 가볍게 재생하는 균형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폐교는 방치된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시간을 담은 ‘살아있는 유산’으로 다시 기능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