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행정 처리이고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의 붕괴입니다.

폐교, 숫자가 말하는 현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전국에서 폐교된 학교 수는 3,900개를 넘습니다. 매년 수십 개의 학교가 문을 닫고 그 속도는 저출생이 심화될수록 빨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읍·면 단위 농어촌 지역의 소규모 학교들은 단 한 명의 입학생도 없이 폐교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으며 합계출산율은 2023년 기준 0.72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숫자는 명확합니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이해관계가 전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폐교 결정을 둘러싸고 주민회의가 파행을 겪고, 도시 이주민 가족과 토박이 주민 사이에 냉랭한 감정이 흐르며, 자녀가 없는 청년들은 "왜 내 세금으로 그 학교를 유지해야 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이 모든 시각을 하나씩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 없는 세대의 시각: "세금 낭비 아닌가요?"
한국의 20~40대 중 상당수는 현재 자녀가 없거나 앞으로도 낳지 않을 계획입니다. 이들이 폐교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따금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이들의 논리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교육 예산은 모든 납세자의 세금으로 구성됩니다. 학생이 5명뿐인 학교를 유지하는 데 수억 원이 들어간다면, 그 돈은 다른 방식으로 훨씬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수의 학생을 위한 학교 유지보다 근본적인 보육·교육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이기적이거나 공동체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 중 상당수는 지역 소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해결책은 "비효율적인 시설 유지"가 아니라 "근본적인 인구 구조 변화"입니다.
한편, '아이 없는 세대' 안에서도 균열이 있습니다. 원하지만 아이를 갖지 못한 사람들, 경제적 이유로 포기한 사람들은 폐교 문제에서 더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었는데 이 사회가 그걸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인식이 있을 때, 폐교는 단순한 재정 낭비 문제가 아니라 내가 꿈꿨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발적 무자녀와 비자발적 무자녀, 경제적 이유와 가치관적 이유가 뒤섞여 있으며, 폐교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학부모의 시각: "아이의 교육권이 먼저입니다"
학교가 폐교되면 가장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은 바로 그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입니다. 이들에게 폐교는 추상적인 정책 문제가 아니라, 내일 아침 아이를 어디에 보낼지의 문제입니다.
통폐합이 결정되면 학생들은 읍내나 더 큰 지역 학교로 통학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왕복 1시간, 심한 경우 2시간이 넘는 통학 시간이 생기고 어린아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긴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야 합니다. 농어촌 지역에서는 대중교통이 열악해 통학 자체가 안전 문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흔히 "학생이 적으면 교육의 질이 낮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장의 학부모들은 오히려 정반대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개별 지도가 가능하고 다양한 학년이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일부 학부모들은 "어차피 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라면 차라리 빨리 결정하고 통합된 학교에서 더 다양한 교육 환경을 경험하는 게 낫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스포츠 시설, 다양한 교우 관계 등은 소규모 학교에서는 제공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학부모들의 요구는 하나로 수렴됩니다. 행정 편의보다 아이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달라는 것,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충분한 논의와 대안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주민의 시각: "학교는 마을의 심장이었습니다"
수십 년째 같은 마을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에게 학교는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을의 역사이자 정체성이며, 공동체의 구심점입니다. 운동회가 열리던 교정, 졸업식이 있던 강당, 명절에 마을 어른들이 모이던 학교 마당은 그들의 삶에 깊이 새겨진 장소입니다.
원주민들이 폐교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단순한 향수 때문만이 아닙니다. 학교가 사라지면 그 지역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곳"으로 낙인찍히고 젊은 인구가 더욱 빠르게 빠져나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상징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지역 소멸 가속화를 의미합니다. 원주민들은 폐교가 결국 마을의 소멸로 이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폐교를 경험한 마을의 원주민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공통적입니다. 학교가 문을 닫자 젊은 부모들이 읍내로 이사를 갔고 마을의 경로당만 남았습니다. 노인 인구만 남은 마을에는 편의점도, 병원도 없습니다. 마을버스는 하루 두 번 옵니다. 학교가 폐교되고 10년이 지난 마을의 모습은, 폐교 반대론자들이 말하던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도 없어진다"는 예언이 현실이 된 광경입니다.
물론 모든 원주민이 폐교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을에 남은 노인들 중 일부는 "어차피 아이들이 없는데 학교 건물만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냐"며 체념하기도 합니다. 폐교된 건물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마을 경관을 해치는 것도 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문제입니다.
이주민의 시각: "우리를 여기 오게 한 게 학교였어요"
귀농·귀촌 붐과 함께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는 가족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주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지역 학교의 존재였습니다. 소규모 학교에서 자연 친화적이고 개별화된 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는 바람,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주민 가족들은 종종 지역 원주민과 미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합니다. 오래 살아온 원주민의 관점에서 이주민들은 "마을의 전통과 문화를 모르면서 목소리만 크게 내는 외지인"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반면 이주민들은 "우리도 세금 내고 아이들 학교 보내는 지역 주민인데, 왜 외부인 취급을 받느냐"라고 느낍니다.
이주민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실제로 폐교 위기였던 학교가 기사회생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주민 자녀들이 늘면서 학교의 분위기와 커리큘럼이 바뀌고 원주민 출신 학부모들은 "학교가 우리 마을의 특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의도적으로 이주민 가족을 유치해 학교 학생 수를 유지하려는 정책을 씁니다. 그러나 이주민 정착이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일시적인 학생 수 증가에 그치고 결국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갈등의 구조: 왜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는가
폐교를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각 집단이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학교"를 두고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자녀 없는 세대는 학교를 공공 서비스의 효율적 배분 문제로 봅니다. 학부모들은 아동 복지와 교육권의 문제로 봅니다. 원주민들은 공동체와 역사의 문제로 봅니다. 이주민들은 이주와 정착의 조건으로 봅니다. 이들이 쓰는 단어는 같아도, 말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여기에 더해 폐교 갈등에는 계급 문제도 숨어 있습니다. 도시에 사는 중산층 이상은 어느 학교에 다니든 사교육과 다양한 교육 자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어촌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공립학교는 사실상 유일한 교육 자원입니다. 학교가 폐교되면 통학 비용, 방과후 돌봄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고 이는 경제적 취약 계층에게 불균형하게 부담됩니다. 폐교를 "효율적인 행정 결정"으로 보는 시각 뒤에는 충분한 선택지를 가진 사람들의 특권적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례로 보는 폐교 갈등의 민낯
경상남도의 한 산간 마을 초등학교는 전교생 7명으로 폐교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이주민 가족 세 가족이 합심해 학교를 지키겠다고 선언했고 원주민 노인들도 학교 텃밭 가꾸기, 할머니 요리 수업 등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교를 살아있는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교육청은 폐교를 2년 유예했고 지금도 그 학교는 운영 중입니다. 그러나 인근 도시의 납세자들 사이에서는 7명짜리 학교를 세금으로 유지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논란이 여전히 계속됩니다.
강원도의 한 마을은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나서 5년 만에 주민 등록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젊은 가족들이 읍내로 이사했고 남은 것은 고령의 원주민들뿐입니다. 폐교된 건물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현재는 외지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임대되어 있습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던 곳에서 이제는 낯선 사람들이 그림을 그린다는 노인들의 말은, 폐교가 가져오는 상실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충청남도의 한 농촌 마을에서는 귀촌 가족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학교가 폐교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주민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위원회를 장악하면서 커리큘럼과 행사 방식을 바꾸자, 원주민 주민들은 "우리 마을 학교를 빼앗겼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학교를 살리려고 손을 잡았다가, 학교를 두고 싸우게 된 역설적인 사례입니다.
해법을 찾아서: 폐교 이후의 공동체는 가능한가
갈등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해법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국 각지의 사례들을 보면 몇 가지 방향성이 보입니다.
첫째, 폐교 결정 이전의 충분한 숙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많은 경우 갈등이 커지는 것은 결정 과정이 졸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상부에서 하달식으로 방침이 내려오면 주민들은 이미 정해진 결론에 반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충분한 사전 공론화가 이루어진 경우, 폐교 이후 대안 마련에도 주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이 신뢰를 만든다는 원칙이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둘째, 학교를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정의하는 시도가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방과후 시간에 지역 노인들의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고 주말에는 마을 행사가 열리는 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능을 넘어 마을의 사랑방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 없는 세대에게도 "내 세금이 지역 공동체를 위해 쓰이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워집니다.
셋째, 폐교가 불가피하다면 이후를 제대로 설계해야 합니다. 통합 학교까지의 통학버스 완전 무상화, 장거리 통학 학생에 대한 지원, 방과 후 돌봄 확충 등 실질적인 대안이 갖춰진다면 학부모들의 반발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넷째, 이주민과 원주민 모두가 대표성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 구조가 필요합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마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가 없는 세대도 지역 공동체의 이해관계자로 포함시키는 일입니다. 학교가 있는 마을은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상권이 유지되며, 부동산 가치도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아이가 없어도 학교가 있는 마을에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마치며: 학교가 사라진 마을의 이야기
폐교는 결코 단순한 행정 결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출생, 지방소멸, 세대 갈등, 계층 불평등, 공동체의 미래가 얽히고설킨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아이 없는 세대의 효율성 요구도, 학부모들의 교육권 주장도, 원주민들의 공동체 보존 의지도, 이주민들의 정착 조건도 모두 정당합니다. 이 목소리들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 그 사이에서 실제로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고, 마을이고, 공동체입니다.
학교 하나가 문을 닫을 때, 우리는 무엇을 잃는지 더 넓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가 사라진 마을은 결국 마을이 아니게 됩니다. 그리고 마을이 사라진 사회는, 아이가 있든 없든, 오래 살았든 새로 왔든, 모두가 살기 어려운 사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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