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정책은 있는데, 현실은 왜 다를까
전국에 방치된 폐교가 수백 개에 달한다.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인 교실, 녹슨 철문이 굳게 닫힌 학교 건물. 이 공간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부는 이미 30년 전인 1993년에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폐교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법으로 표명한 것이다. 이후에도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은 크고 작은 폐교 활용 정책들을 꾸준히 내놓았다. 그런데 왜 현장에서는 여전히 방치된 폐교가 넘쳐나는 걸까?
정부의 폐교 활용 정책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어디서 막히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이 글에서 냉정하게 짚어보려 한다. 정책의 내용을 알고 그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해법을 찾는 첫걸음이다.
1. 정부 폐교 활용 정책의 법적 근거와 골격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이란
폐교 활용 정책의 뿌리는 1993년 제정된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이다. 이 법은 폐교 재산의 효율적 활용을 촉진하고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법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폐교 재산의 처분 방식을 규정한다. 매각, 임대, 관리 위탁의 세 가지 방식이 있으며 원칙적으로 공익적 목적의 활용을 우선시한다. 둘째, 활용 우선순위를 정한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다음으로 교육·문화·복지 시설, 그다음에 일반 민간 활용 순이다. 셋째, 폐교 재산의 수익은 교육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법은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활용 범위를 점차 넓혀왔다. 초기에는 교육·문화 목적에 한정되었던 것이 이후 관광, 체험, 농업, 창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다.
교육부의 폐교 활용 종합 계획
법적 근거 외에도 교육부는 주기적으로 폐교 활용 종합 계획을 수립해 왔다. 각 시·도 교육청의 폐교 현황을 파악하고 미활용 폐교를 줄이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며 활용 유형별 우수 사례를 발굴해 전파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폐교 재산의 임대료 산정 기준을 완화하거나 임대 기간을 연장해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왔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확대
2010년대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폐교 활용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교육청이 소유권을 갖고 있더라도 폐교 부지의 실질적 활용은 해당 지역 지자체의 협력 없이는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약을 맺고 공동으로 폐교를 지역 자원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2. 정책의 성과: 실제로 잘 된 것들
비판만 하기 전에 먼저 정책이 이뤄낸 성과를 공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분명히 성공한 사례들이 있고 그것이 정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국 폐교 활용률의 꾸준한 증가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폐교 중 활용 중인 비율은 2000년대 초반 50% 수준에서 최근 70% 후반대로 올라섰다. 절대적으로 보면 아직 부족하지만 추세로 보면 꾸준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활용 유형도 다양해졌다. 농촌 교육·체험 시설이 가장 많고 문화·예술 공간, 사회복지 시설, 귀농·귀촌 지원 센터, 관광 시설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단순히 공공기관에 임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폐교 활용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분명한 성과다.
성공적인 폐교 활용 사례들
강원도의 한 폐교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체험 학습 센터로 탈바꿈해 연간 수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시설은 도시 아이들에게 농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지역 농업과의 연계 효과도 만들어내고 있다.
전라남도의 한 섬 마을 폐교는 예술가 레지던시로 변신했다. 교육청과 지자체, 문화재단이 협력해 만든 이 공간은 전국의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위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고 덩달아 섬 관광까지 활성화되는 효과를 냈다.
충청북도의 한 폐교는 청년 창업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저렴한 임대료로 사무 공간과 공방, 창고를 제공하면서 귀농·귀촌 청년들의 창업 거점이 되었다. 이 사례는 폐교 활용이 단순히 공간 재활용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정책의 한계와 문제점: 왜 여전히 방치된 폐교가 많은가
성과가 있지만 한계와 문제점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① 복잡하고 느린 행정 절차
폐교를 활용하고 싶은 사람이나 단체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복잡한 행정 절차다. 폐교 재산을 임대하거나 매입하려면 교육청, 지자체, 경우에 따라서는 교육부까지 여러 기관을 거쳐야 한다. 각 기관의 담당 부서가 달라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고, 허가와 승인을 받는 데 수개월에서 길게는 1~2년이 걸리기도 한다.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 과정이 너무 번거롭고 불확실하다. 어렵게 사업 계획을 세워 신청했다가 한참 뒤에 거절당하거나 허가 조건이 바뀌어 애초의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서 이런 행정 속도는 민간 참여를 저해하는 핵심 요인이다.
② 높은 리모델링 비용과 부족한 재정 지원
폐교 건물 대부분은 노후화가 심각하다. 30~50년 된 건물에 전면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비용이 수억에서 수십억 원에 달한다. 교육청은 임대를 해주지만 리모델링 비용은 임차인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리모델링을 마친 뒤에도 임대 계약이 종료되면 원상복구 의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억대의 비용을 들여 공간을 단장했지만 계약이 끝나면 다 허물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 조건 때문에 사업 의지가 있는 사람들도 결국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지자체가 리모델링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예산 규모가 작고 지원 대상이 한정적이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③ 접근성과 수익성의 근본적 한계
폐교가 많은 농산어촌 지역은 대부분 접근성이 좋지 않다. 대중교통이 없거나 있어도 하루에 몇 차례뿐이고 가까운 시내까지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입지에서 카페, 숙박, 체험 시설 등을 운영해 수익을 내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초기에 화제를 모으며 문을 연 폐교 활용 시설들이 2~3년 만에 다시 문을 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처음에는 신기함과 감성에 이끌려 방문객이 몰리지만,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재방문율이 낮고 비수기에는 운영이 어렵다. 폐교 활용 사업의 지속 가능성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④ 지역 주민과의 갈등과 소통 부재
폐교를 활용한 새로운 시설이 들어섰을 때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항상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조용한 마을에 관광객이 몰리고 차량 통행이 늘고 소음이 발생하면서 기존 주민들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특히 농촌의 경우 외지인이 들어와 사업을 벌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지역도 있다.
이런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소통과 협의 과정이 정책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좋은 취지의 폐교 활용 사업도 지역 주민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결국 실패하게 된다.
⑤ 정보 접근성의 불균형
폐교를 활용하고 싶어도 어떤 폐교가 어디에 있고 어떤 조건으로 임대가 가능한지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교육청마다 공고 방식이 다르고 일부는 홈페이지 공지만으로 끝내는 경우도 있다. 전국의 폐교 정보를 한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것이 정보 접근성 문제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정보력이 있는 대형 사업자나 특정 인맥을 가진 사람들만 좋은 조건의 폐교를 선점하는 불평등 구조가 생기기도 한다.
⑥ 일관성 없는 정책과 교육감 교체에 따른 방향 전환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폐교 활용 정책의 방향과 강도가 달라지는 것도 문제다. 전임 교육감이 적극 추진하던 폐교 활용 사업이 새 교육감 취임 후 방치되거나 축소되는 경우가 있다. 4년 임기의 선출직 교육감 체제에서 장기적이고 일관된 폐교 활용 정책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4. 정책의 실효성: 종합적인 평가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현재 정부의 폐교 활용 정책은 방향은 맞지만 실행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법적 근거와 기본 방향은 갖추어져 있다. 공익 목적 우선 활용, 민간 참여 유도, 지자체와의 협력이라는 원칙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복잡한 행정 절차, 부족한 재정 지원, 불명확한 수익 모델, 정보 접근의 어려움이 가로막아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활용률이 70% 후반대라고 하지만 이 숫자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허수가 적지 않다. 활용 중으로 집계되지만 실제로는 창고로 쓰이거나 임시 주차장, 또는 유명무실한 시설로 운영되는 경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역 사회에 가치를 창출하는 활용으로 좁히면 실질적인 비율은 훨씬 낮아질 것이다.
5.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이렇게 바꿔야 한다
비판으로 끝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떻게 바꿔야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원스톱 행정 시스템 구축
폐교 활용을 원하는 민간 주체가 교육청 한 곳을 통해 모든 절차를 처리할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여러 기관을 전전하는 구조를 단순화하고 처리 기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임대 신청 후 60일 이내 결과 통보를 의무화하는 방식이다.
리모델링 비용 지원 확대와 원상복구 의무 완화
폐교 활용의 가장 큰 걸림돌인 리모델링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일정 비율의 비용을 보조하는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계약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충분히 보장하고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원상복구 의무를 면제하는 유연한 조건을 도입해야 한다.
전국 통합 폐교 정보 플랫폼 운영
현재 교육청마다 분산되어 있는 폐교 정보를 하나의 통합 플랫폼에서 제공해야 한다. 전국 폐교의 위치, 규모, 시설 상태, 임대 조건, 신청 방법을 누구나 쉽게 검색하고 신청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이 필요하다. 온비드(OnBid)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폐교에 특화된 더 직관적인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지역 주민과의 사전 협의 절차 의무화
폐교 활용 사업 승인 전에 지역 주민과의 공식 협의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단순한 공청회를 넘어 지역 주민이 사업 방향 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협치 구조를 갖추어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활용이 가능하다.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 개발 지원
접근성이 낮은 폐교에서 지속적인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정책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공간만 내주는 것이 아니라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 지역 농산물 판로 개척, 체험 프로그램 기획 지원 등 사업이 안착할 수 있도록 초기 3~5년간 경영 컨설팅과 마케팅 지원을 패키지로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6. 민간의 역할: 정책만 탓할 수 없다
정책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민간 역시 폐교 활용을 위해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소셜 벤처, 협동조합, 마을 기업 등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폐교 활용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단순한 영리 사업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 가치를 만드는 모델로 접근할 때 지역 주민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쉽고 정책적 지원도 더 잘 연결된다. 귀농·귀촌 청년들이 공동으로 폐교를 임대해 각자의 사업을 운영하는 협력 모델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지역 주민과 외부 지지자들이 함께 폐교 활용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방식도 주목받고 있다. 지역에 연고가 있는 졸업생들이 모여 폐교된 모교를 함께 살리는 프로젝트를 만들면 정서적 유대감과 사업성을 동시에 갖는 독특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나오며: 정책의 가능성과 한계 사이에서
정부의 폐교 활용 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도 아니고 충분히 성공한 정책도 아니다. 방향은 맞지만 실행력이 부족하고, 성과는 있지만 현장의 체감은 여전히 아쉽다.
폐교는 앞으로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저출산과 지방소멸이 가속화되면서 문을 닫는 학교의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 공간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지금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정책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포기할 이유도 없다. 행정 절차를 단순화하고, 재정 지원을 강화하고, 민간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간다면 폐교는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
빈 교실에 새로운 이야기가 채워지도록. 정책이 더 영리해지고, 민간이 더 용감해지고, 지역 주민이 더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는 그날을 위해 지금의 논의가 멈추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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